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어느 아내의 이야기 -에필로그

어서 오세요∼ 날이 많이 서늘해졌죠?
성욱은 뒷자리에 타는 손님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물었다.
 
한 아가씨가 뒷자리에 앉으며 대답한다.
네, TV에서 가을이라더니 확실이 느껴지네요.
 
이번 여름은 참 더운 줄 모르고 갔어요. 그죠?
성욱은 특유의 빅스마일로 손님께 말한다.
 
현재...
성욱은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지난 겨울... 처음 전역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전후사정을 모르는 많은 지인들은 극구 만류를 했었다.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시점에 아무런 대책 없이 이렇게 덜컥 그만 두면 뭐 먹고 살거냐.
그동안 모아 둔 돈이 있느냐.
혹시 로또라도 된 거 아니냐. 등등...
 
성욱은 그런 주위의 걱정이나 비웃음에 묵묵무답으로 일관하며 일사천리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켜 갔다.
 
자신의 처남이자 친동생과도 같은 동진의 도움과 그 간 모아둔 돈으로 세 식구는 먼저 전셋집을 구했다.
성욱은 이내 택시회사에 취직했고 오늘처럼 택시를 운전하게 된 것이다.
 
한편 유진은 초등학교의 조리사로 근무 중이다.
남편의 결심 후 학원에 다녀 딴 한식 조리사 자격증으로 그녀도 남편과 비슷한 시기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 후배의 권유와 도움으로 잡지기사 교정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삼십대의 두 부부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쪼들리는 것은 면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단란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루, 하루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 지금 어디야?
성욱은 막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주고 아내, 유진의 전화를 받았다.
응,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유진은 빡빡한 생활 가운데서도 틈을 내 드라마 시나리오를 썼다.
MBC 베스트 극장의 시나리오를 모집한다는 방송을 보고 유진은 - 실로 오랜만에 -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아무런 기대나 부담 없이 써 본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진지해졌다.
오래도록 그녀의 내면에서 쌓여가던 쓸거리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진은 몇 달에 걸쳐 완성한 시나리오를 남편에게 건냈다.
제목이 늪이야. 어떤지 한 번 읽어봐.
 
시나리오를 읽은 남편은 유진에게 호들갑을 떤다.
내가 남편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건 몬테카를로 대상 감이야!
그 말이 거짓이든, 진담이든 유진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말로 MBC에 응모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 둘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봉투에 담겨진 시나리오를 보고 유진이 말했다.
이거 정말 입선이라도 할 수 있을까?
성욱은 유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용기를 북돋운다.
걱정마. 모두들 깜짝 놀랄 거야.
 
유진은 자신의 글뭉치를 건넸다.
얼마죠?
우체국 직원이 짧게 1850원이라고 대답한다.
 
요금을 지불하고 성욱과 함께 나오며 유진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되든, 안 되든 어쨌든 굉장히 홀가분하다. 그동안 짓누르던 것을 벗어버린 기분이야.
 
성욱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작가가 되는 일만 남으셨네요. 최작가님.
유진은 그 말에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대답한다.
이왕이면 흥행작가, 최유진이라고 불러줘요.
 
우체국의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유진은 성욱의 손을 잡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손을 잡고 가로수 밑을 잠시 걸었다.
유진의 분홍빛 뺨에 가을 바람이 스치운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잘 견디어내고 이제 가을을 맞이하게 된 유진과 성욱.
몸은 둘이지만 하나의 인생으로 기꺼이 살고 있는 이들 부부의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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