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6일 월요일

엄마의 와인 한잔 -2부

1984년 2월 19일
 
 
 
 
 
엄마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얼굴이 발갛게 홍조를 띄고 운전을 하고 있다.
 
 
 
 
 
내가 제대한다고 사단 사령부 앞에서 3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입이 벌려졌다.
 
 
 
 
 
식사를 하고 가자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피곤하다며 집으로 바로 가기를 주장했다.
 
 
 
 
 
깊은 산속의 산장은 비수기라서 조용하고 아늑했다.
 
 
 
 
 
엄마는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3일 휴가를 주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그 동안의 변화에 대하여 쉴새 없이 떠들어 댔다.
 
 
 
 
 
난 거실의 소파에 기대 앉아 분주하게 오가는 엄마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 보았다.
 
 
 
 
 
45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날씬하고 육감적인 몸이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지만 그래도 역시 어려보이는 얼굴, 아마도 나 같은 어린 아들과 살아서, 그리고 나의 신선한 정액을 계속 공급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 음탕한 보지를 떠올렸다.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자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커지기 시작했다.
 
 
 
 
 
용수철이 늘어나는 느낌.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물질의 팽창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엄마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한번 보게. 내 보지.”
 
 
 
 
 
난 마루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엄마는 약간의 치기어린 반항을 했지만 순순히 나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따랐다.
 
 
 
 
 
난 팬티까지 벗기고 엄마의 두 다리를 크게 벌렸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엉덩이를 바깥 쪽으로 밀어내고 두 다리를 벌려 나의 눈앞으로 습기찬 보지를 들이 밀었다.
 
 
 
 
 
“예뻐?”
 
 
 
 
 
“응. 정말 맛있게 생겼다.”
 
 
 
 
 
살짝 벌려진 보지는 벌써 씹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열기를 품고 있다.
 
 
 
 
 
난 한 손으로 보지를 움켜 잡았다가 풀며 보지를 크게 돌렸다.
 
 
 
 
 
손바닥에 씹 물이 물처럼 묻어났다.
 
 
 
 
 
자지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난 입을 가져가 보지를 빨았다.
 
 
 
 
 
엄마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커다란 신음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보지 이곳 저곳을 빨아대자 엄마의 반응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나의 혀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때는 온몸을 움찔거리며 괴성을 질렀다.
 
 
 
 
 
어느덧 엄마는 소파에 거의 누워서 하복부를 천정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난 조심스럽게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자지가 강하게 위쪽으로 퉁겨 올라왔다.
 
 
 
 
 
엄마의 몸 위로 올라가 자지를 잡고 귀두를 보지 구멍에 맞추었다.
 
 
 
 
 
엄마는 두 손으로 소파를 움켜지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흐려진 초점 아래로 강한 욕망이 이글거렸다.
 
 
 
 
 
난 온몸으로 자지를 밀어 보지 속으로 들여 보냈다.
 
 
 
 
 
‘ 드르륵.’
 
 
 
 
 
그런 느낌이 맞을 거다.
 
 
 
 
 
나의 자지는 엄마의 보지구멍 속으로 요란한 자극을 울리며 전진했다.
 
 
 
 
 
엄마의 보지는 더욱 커진 나의 자지로 인해 거의 찢어질 듯이 늘어나며 보지 주변의 늘어진 살들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듯이 몰려 들었다.
 
 
 
 
 
입구를 지나자 덜꺽하며 질 벽이 느껴졌다.
 
 
 
 
 
많이 늘어난 보지지만 갑자기 커진 나의 자지는 질 내부를 가득 채우며 밀고 들어갔다.
 
 
 
 
 
“ 으~억.”
 
 
 
 
 
엄마는 괴성을 길게 내며 두 손으로 나의 앞가슴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의 자지가 계속 전진하자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마치 가래가 끊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자지가 보지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박히자 난 가만히 엄마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엄마 나의 선물이야.”
 
 
 
 
 
그리고는 허리를 움직여 자지를 천천히 왕복운동 시켰다.
 
 
 
 
 
“ 드르륵~ 드르륵…”
 
 
 
 
 
마치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이 자지에서 보지전체로 퍼져 나갔다.
 
 
 
 
 
엄마는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는 눈을 허옇게 뒤집었다.
 
 
 
 
 
몇 번의 왕복이 지났을 무렵에 난 엄마의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러나 난 멈추지 않고 빠르게 다시 느리게를 반복하며 엄마의 보지를 유린했다.
 
 
 
 
 
약 10분 동안 엄마는 거의 수 십번에 걸친 발작을 했다.
 
 
 
 
 
내가 정액을 쏘아 낼 때쯤 엄마는 “그만..그만..”을 작게 신음처럼 이빨사이로 흘려내었다.
 
 
 
 
 
사정 후 난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며 엄마를 보았다.
 
 
 
 
 
담배를 다 필 때까지도 엄마는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가끔씩 움찔거렸다.
 
 
 
 
 
보지아래쪽 소파는 마치 물을 쏟은 듯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보지에선 뭉클뭉클 거리며 나의 정액인지, 엄마의 씹 물인지, 농도 진한 액체가 계속 흘러내렸다.
 
 
 
 
 
내가 보지에 손가락을 대자 엄마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잠깐”이라는 소리를 짧게 외쳤다.
 
 
 
 
 
담배를 피고 나서 난 다시 자지를 세웠다.
 
 
 
 
 
아니 자지는 이미 발기해 있었다.
 
 
 
 
 
아무 말도 않고 엄마의 배 위로 다시 올라 갔다.
 
 
 
 
 
엄마는 두 손으로 나의 가슴을 밀며 힘없이 말했다.
 
 
 
 
 
“아, 안돼. 그만. 지금은… 지금은…”
 
 
 
 
 
그러나 밀어내는 두 팔에 서 힘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난 아직도 끈적한 액체가 몽실몽실 흘러내리는 엄마의 보지구멍에 자지를 맞추고 힘껏 박아 넣었다.
 
 
 
 
 
부드럽지만 뻑뻑하게 나의 자지는 보지 깊숙이 들어가 강하게 벽을 두드렸다.
 
 
 
 
 
엄마는 숨넘어가는 괴성을 이빨사이로 흘려내며 나를 껴안았다.
 
 
 
 
 
나의 왕복운동이 시작되고 엄마의 몸이 진동처럼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엄마는 정신을 잃었다.
 
 
 
 
 
난 그제서야 자지를 빼고 엄마를 자유롭게 하여 주었다.
 
 
 
 
 
그리고 엄마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엄마의 몸이 아직도 가늘게 떨고 있었다.
 
 
 
 
 
특히 벌려진 다리 사이의 보지구멍도 움찔거리며 씹 물이 틀림없을 액체를 연신 흘려내고 있었다.
 
 
 
 
 
난 그 옛날처럼 자지를 드러내 놓고 엄마의 보지를 내려다 보았다.
 
 
 
 
 
나의 자지는 엄마의 씹 물을 잔뜩 뒤집어 쓴 채로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참기로 했다.
 
 
 
 
 
벌써 가혹하게 엄마의 보지를 유린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난 자지를 잡고 엄마의 보지를 보며 자위행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액을 엄마의 보지에 뿜어내었다.
 
 
 
 
 
우리는 그리고 새벽까지 잠을 잤다.
 
 
 
 
 
잠결에 엄마가 자지를 잡으며 나의 품에 안기는 것을 느꼈다.
 
 
 
 
 
옛날처럼…
 
 
 
 
 
그러나 난 긴장하지도 그런 엄마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냥 여유롭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엄마는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는 너무도 자극적인 쾌감이 오히려 고통처럼 느껴져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오르가즘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어기적거리며 뒷물을 하러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난 한참을 웃었다.
 
 
 
 
 
아마도 그건 만족에 겨운 승자의 웃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의 자지를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더 이상의 sex는 불가능했다.
 
 
 
 
 
엄마의 보지가 정상이 아니었다.
 
 
 
 
 
엄마는 엄청나게 커진 나의 자지를 잡고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단지 한입에 자지를 빨 수 없는 것이 걱정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행복한 귀향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1986년 11월
 
 
 
 
 
꿈 같은 나날들이다.
 
 
 
 
 
나는 25살이 되었고 엄마는 47세가 되었다.
 
 
 
 
 
되 살아난 경기로 인해서 사업이 번창하여 산장을 크게 증축했다.
 
 
 
 
 
서울의 커피전문점도 관리하는 친척과 동업하여 체인화 하였다.
 
 
 
 
 
그래서 난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산장 뒤쪽 산중간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우리는 그곳에서 지낸다.
 
 
 
 
 
그 동안 우리는 완전한 부부가 되었다.
 
 
 
 
 
엄마가 딸을 낳은 것이다.
 
 
 
 
 
엄마를 닮아서 무척이나 예쁘다.
 
 
 
 
 
난 우리 관계의 특이성 때문에 출산을 반대하였지만 엄마는 간절하게 바랐다.
 
 
 
 
 
아이로 인해서 우리 관계가 완전해 진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올 때부터 엄마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출산할 때까지 강릉까지 왕복하며 병원을 다녔고 엄마는 몇 달을 강릉에서 지내며 몸조리를 하였다.
 
 
 
 
 
출생신고는 엄마의 딸이며 나의 동생으로 되었지만 엄연한 나의 딸이었다.
 
 
 
 
 
나중에 복잡한 일이 생길 것이 염려되었지만 당장 엄마가 너무 좋아하니까 만족이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중국에서 왔다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지만 한동안 엄마는 무척이나 바쁘게 지냈다.
 
 
 
 
 
사람들은 엄마가 양녀를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 또 한가지가 늘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그 동안 sex를 거의 못하고 지냈다.
 
 
 
 
 
출산 후에도 한동안은 마찬가지 였다.
 
 
 
 
 
특히 일하는 아주머니가 와 있는 낮 동안은 무척 불편했다.
 
 
 
 
 
최근 들어서 엄마는 다시 밤이 되기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의 보지는 출산 후에도 여전히 왕성한 성욕을 유지 했는데 힘이 조금 부치는 듯도 해서 난 조심스러웠다.
 
 
 
 
 
한 달에 반은 서울에서 지내는데 그 기간동안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기 때문에 산장에 와 있는 동안은 엄마의 넘치는 성욕을 받아 주어야 했다.
 
 
 
 
 
엄마는 밤마다 두 다리를 벌고 나의 자지를 원했다.
 
 
 
 
 
엄청나게 커진 자지지만 엄마의 보지는 완전하게 적응하여 자유롭게 sex를 할 수 있다.
 
 
 
 
 
나의 정액은 50을 바라보는 엄마의 보지구멍 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돌아 다니고 있다.
 
 
 
 
 
우리 딸도 이제 곧 2살이다.
 
 
 
 
 
행복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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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집에서.

  내가 10살 되던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우리가족은 부산에 살고있는 이모의 집에 놀러갔다. 이모는 애기를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예전엔 좀 마른편이었는데 지금은 통통하게 보였다.그래도 이쁜건 여전했다.오히려 귀여워 보여서 좋았다. 날도둑놈 ...